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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ling

무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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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요? 진짜 소설 같다"
- 진짜예요. 제 친구랑 하고 있더라니까요.
"그래서 그거 보자마자 오늘 뛰쳐나온 거?!"
- 네. 도저히 그 상황에서 화를 내기도 어이가 없길래, 그냥 뛰쳐나왔죠
"와.. 한 잔해요. 평일날에 이런 이야기도 듣고, 정말 센세이션 하네요"
- 그렇죠? 저도 어이가 없어서.. 근데 화는 나고, 집에 가기는 답답하니, 그냥 자주 가던 포차나 나와봤어요

'챙-'

- 근데 두 분은 연애 안 해요?
“전 학교 다니느라..”
“저는 대학원 다니느라..”
- 아.. 제가 괜한 이야기를 했네요.. 하하. 두 분 다 인물이 출중하셔서, 연애하시는 줄 알았어요.
“하하, 시험기간에 학교 와서 밥 사 주는 그런 남자면 더할 나위 없이 사귈 텐데. 그런 남자가 없네요”
“에이, 너 그건 너무 도둑놈 심보 아니냐”
- 맞아요,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본인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야 그런 상대를 만날 수 있어요.
“오~ 명언 제조기”
“으.. 명언충이야 저건”

티격태격,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나이도 이름도 까면서, 소주를 계속 까기 시작했다. 거의 셋이서 맥주까지 합해서 열병째 마셨을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일어난 이유는 하나다. 막차.

- 재혁씨, 재혁씨, 아까 내가 먹은 거랑 같이 싹 먼저 계산할게요.
“네? 왜 병국이형이 내요~ 같이 내요 같이. 야, 정신차려어~ 야~ 정민아!”
“흐어.. 교수님 싫어요.. 으아..”

같이 온 친구가 만취가 되었고, 결국 병국이형이 모든 술자리를 계산했다. 셋이 걸어가서 막차 버스를 타려고 하였으나, 정민이 덕분에(?) 버스를 보기 좋게 놓쳤다. 그때, 정민이는 갑자기 정신차리더니 ‘아, 나 회기 가서 잘래’라고 하며 날 길바닥에 버리고 택시를 잡아 본가로 가버렸다.

- 술 취하면 저렇게 귀소본능이 좋은 편인가요?..
“네, 정민이 원래 저래요.. 하.. 머리 아파”
- 어떻게 가게요? 내일 학교 아침 9시 수업이라면서요
“아, 저 그냥 피시방에서 있다가 가죠 뭐. 지금 택시 잡으면 오만원 그냥 깨져요..”
- 그럼 저랑 칵테일이나 한 잔 더 할래요?

‘아, 그건 좀..’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지금 이 꼬락서니로 9시 전공 듣는 건 무리다. 그냥 더 놀고 친구 녹음파일로 공부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하던 도중, 병국이형은 내 손을 잡았다. 

- 그냥 갔다가 가요. 어차피 내일도 망한 거.

나는 '아~ 안돼요~'라고 손을 내치면서도, 이미 형 손에 끌려서 지하에 있는 이쪽 바로 끌려갔다. 아니, 끌려갔다는 표현보다는 그 형의 손을 잡고 내 발로 걸어갔다. 술에 취해서 약간 걸음걸이가 꼬였지만, 그래도 새로운 사람과 늦은 시간까지 놀았다는 것이 재밌었을지도. 똑같은 돌아가던 학교 일상 속에 비집고 들어온 그는 조금이나마 신기했다. 취해서보니 얼굴이 잘생긴 것 같기도, 몸이 좋은것 같기도.. 술을 마시고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천장 밑에 벗고 있는 병국이형과 나였다.

 

"아?.. 으, 머리야"

- 잘 잤어?

"..여기.. 하아.. 저 기절했어요?"

- 응. 끌고 와서 눕히니, 잘 자더라. 가지런히 옷도 벗고 잤어. 너.

 

형의 손 끝을 따라가니 옷걸이에 가지런히 옷이 걸쳐져있었다. 옷을 보니, 이리저리 먼지같이 하얀 것들이 묻어 있고, 어디서 굴렀는지 더러워져 있었다. 

 

"옷은 왜 저래.. 하아.. 대충 입고 기숙사 가야지.. 지금 몇 시죠..”

- 아, 네 폰 충전해놨어. 잠깐만

 

형이 이불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체 차림으로 테이블에 있는 내 폰을 가져다줬다. 뒤태부터 앞태까지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병국이 형의 몸은 확실히 건장한 타입이었고, 그리고 .. 아침이라 그런지 성나 있었다. 난 살짝 부끄러워서 형의 눈을 제대로 못 마주치고 핸드폰을 받았고, 핸드폰의 시계를 보고 난 정신을 차렸다. 왜냐면 시간이 아침 11시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공 수업을 안 간다고 하더라도, 오후 3시의 실험 수업을 가야지 A+을 받을 수 있었기에.. 하지만, 지금 정신 상태와 내 속을 생각하면, 오늘 하루를 날려야 할 듯하다.

 

"아.. 형 저 학교를 가야 하는데, 못 일어날 것 같아요.”

- 물이라도 줄까?

"네, 형. 물 한 모금만.."

 

형은 이불속에 들어왔다가, 내가 물을 말하자 다시 벌떡 일어나더니, 벌떡 일어나있는 물건을 덜렁거리며 냉장고로 가서 물을 꺼내다 주었다. 이쯤 되면 이거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거 아닌가 싶더 찰나에, 형은 그대로 내 누워있는 머리 쪽에 올라탔다. 

 

- 여기도 물은 많은데. 어제는 신나게 입에 물더니, 정신 차리고 보니 별로야?

 

머리 한 대 맞은 것 같다. 어제의 술 취한 난 뭘 한 거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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