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rrr.. Rrrr..
"야, 뭐하냐?"
"나, 그냥 오늘 수업 갔다가 집에 있지, 왜?"
"오늘 포차나 갈래? 날도 되게 시원하다"
"에이 됐어, 무슨 평일날 포차야."
"아 왜~ 오늘 같은 날 딱 포차 각이지, 시원시원하기도 하고 말이야"
"아 귀찮아, 내일 9시 전공이야"
"언젠 술 안 먹고 갔냐? 가자 가자, 가자아아아"
"아 귀찮게 하지마라.."
"알았어, 9시에 고래에서 만나!"
- 뚝.
'아 씨, 귀찮게 진짜..'
항상 종로를 나가는 건 갑작스럽게 이동하는 일이 많은데, 오늘은 친구 징징거리는 게 갑작스럽고 짜증 나기 시작했다. 지금 서울로 갔다가,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오고 내일 수업을 간다는 것은, 내일 수업을 안 듣겠다는 말과 똑같으니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 서울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를 타고가는 도중에도 친구와 계속 문자 하며, 40분가량 걸리는 버스에서 심심함을 달랬고, 가는 길에 간간히 어플을 켜줬다.
어플을 켜도 버스가 움직임에 따라 실시간으로 GPS가 바뀌기에, 사람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게 재밌었다.
딱히, 당시에는 연애 생각보다 내가 하고 있는 대외활동과 학교 생활에 더욱 열중했던 터라 연애에 큰 관심이 없었다. 정말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쓸려, 내 친구들만 만나고, 그 외의 새로운 인맥을 넓혀가는 내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도착한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다시 또 어플을 켜서 새로 고침을 눌러주고, 주변을 스캔했다. 분명 난 평일 종로를 나온 것뿐인데, 굳이 어플을 돌려가며 새로운 사람을 보겠다고.. 아마 그냥 버릇이 된 것 같다. 중독이랄까. 요즘 날의 SNS 스토리 보는 것과 똑같을지도
순간 듣고 있던 노래가 바뀌며, '에픽하이&클레지콰이의 혼자라도'라는 노래가 나왔다. 가사를 듣다 보니 지금 상황이랑 얼추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워하는 사람은 딱히 없었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지금의 상황과 비슷한 랩 가사와 사비 부분. 아님 말고
친구랑 결국 만나서, 항상 똑같이 안주 두 개를 시키고 소주 네 병을 마시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 동아리 뒷담화도 하며 재미있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물론 당시 유명한 어플도 중간중간 켜보고, 주변 사람들을 평가도 해보며 우리가 뭐라도 된 듯이, 이 사람은 무엇이 부족하다느니, 혹은 이 사람은 내가 소문을 들었다느니 등의 이야기로 술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2개나 시킨 안주가 사라졌네? 그러면 다음역인 포차를 가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이상하게 종로 가는 날에는 항상 비가 내렸던 것 같다. 그냥 왠지 기분이 그렇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걸어가면서도, 길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을 한 번 쳐다본다. 그 사람들도 분명 우산을 써서 보이지 않지만, 그냥 눈은 그 사람을 향해 있다. 아무래도 우리의 무의식에서 나오는 행동 아닐까. '나랑 같은 사람인가?'라는 무의식에서부터 나오는.
포차에 도착한 우린 항상 시키던 스팸과 고갈비, 그렇게 먹고도 모자랐단 듯이 안주 두 개를 시킨다. 항상 가던 3번 출구 앞 포차에 앉아서 우리는 아까 다 못했던 이야기 꽃을 피운다. 사실 다 못했던 이야기는 없다. 술 먹으며 이야기하는 것들은 항상 새롭고, 아까 이야기했던 말들도 재밌고, 그리고 한 달 전에 있던 해프닝을 다시 말해도 재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11시가 되었고, 집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한 병 더 외치는 친구의 말에 나도 기분이 좋았는지 끄덕였고, 내가 담배를 피우는 사이 친구는 화장실을 갔다. 담배를 핀 뒤 우산을 접고 다시 들어가니, 그 사이에 포차에는 남자 한 명이 혼자서 소주잔에 술을 따르고 있었다. 우리 자리로 걸어가서 의자에 앉았는데, 그 남자를 흘깃 보니 정장 차림에 슬픔, 어두움, 좌절 등을 얼굴에 잔뜩 써놓고 있었다. 누가 봐도 이별한 사람처럼.
많이 슬픈 사람인가보다..라는 생각을 잠깐 하고 핸드폰을 했다. 그때 친구가 화장실을 다녀오자마자 그 남자를 보더니 나에게 잘생겼다고 귓속말로 말해주었다. 난 '뭐 그냥 그렇네..'라는 생각으로 흘러 넘겼는데, 점점 우리 이야기 소리보다 그 남자의 이야기가 우리 귀에 꽂히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친구와 전화 중이었던 것도 아니었고, 혼자 이모에게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었다. 그의 말투는 이미 술을 많이 마신 했다. 우리처럼 엄청 많이.
왜냐면 친구와 나도 꽤나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그 와중 그 이야기에 맞장구쳐주고 있었기에.
그를 다독여주는 말도 하고, 그럴 수도 있다는 맞장구도 치고.
우리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이모와 대화하던 그 사람과 자연스럽게 합석하여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했다.
세상. 처음 합석을 했는데, 혼자 포차를 와서 울고 있는 남자라니.
재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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