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작한 가벼운 입장난은 점차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끝내 절정을 보고 나서야 방 안에 뜨거웠던 온기는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술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방금의 움직임은 뜨거운 살색 덩어리들 내의 알코올을 날리기 위한 운동이었나 싶을 정도다.
"형, 너무 큰 것 같아요"
중간에 있는 썰렁한 적막을 조금이나마 없애보고자, 먼저 말을 꺼냈지만 다시 모텔방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 먼저 씻으세요. 형"
- 응.
단답을 하고서는 형은 바로 화장실을 들어갔고, 나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언제쯤 끝날지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아까 분명 섹스를 한 것 같으나, 절정이었던 순간만 기억이 날 뿐, 중간의 대화나 행동들 등에 대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마 속궁합이 매우 잘 맞는 타입이었을지도 모른다. 손도 안 댄 상태로 가버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니까. 그런 와중에 아까 있던 일들을 살짝 복기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 그 사이에 또 ..
" 네? 어! 어, 이건 아니 그게; "
분명 아까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곳은, 젤이 범벅인 된 후 마른 형태의 응고체들이 붙은 채로 하늘로 치솟아 있었다.
- 어서 씻고 와. 나가서 해장하자.
" 아, 네.. 넵."
나는 그대로 덜렁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가서 씻고 나왔고, 형은 이미 옷을 다 입은 상태로 침대에 걸터앉아서 핸드폰 어플을 하고 있었다. 그 화면을 보고 기분은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둘이 사귀는 단계도 아니니까 내가 뭐라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벗어둔 옷가지와 내 짐들을 챙기고 병국이형과 나와서 근처에 있는 곰탕집을 갔다.
- 여기 내가 해장하러 자주 오는 곳이야. 맛있어. 시래기가 들어가서 시원하거든.
" 아, 넵.. 잘 먹겠습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해장국을 한 그릇 원샷을 한 뒤 나왔다. 여기까지는 어찌어찌 형이 이끌고 와서 못 이기는 채 끌려왔지만, 지금 이 순간 뒤로 부터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먼저 커피를 먹자고 해야 하나, 아니면 집에 조심히 가라고 인사를 해야하나, 아니면 그냥 냅다 뛰어서 튀어야 하나?
- 어제는.. 음.. 재밌었어. 나중에 또 만날 수 있을까?
말을 먼저 꺼낸 건 병국이형이었고, 나는 형을 바라보면서 말하기가 뭔가 민망했다.
" 어.. 저 근데 아직 학생이고, 지금도 졸업 논문도 있고.. 종로도 자주 못 나오고.. 알바도 하느라 시간도.. "
- 아, 알았어. 괜찮아. 어서 가서 쉬어.
어물쩡 대답하다가 형은 나에게 먼저 작별인사를 했다. 이렇게 되려고 말을 못 한 건 아닌데, 잠깐 머뭇거리고 대답을 못한 사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 어, 아니요. 형, 그게 아니라. "
- 나도, 대학 다녀봐서 알아. 그 시기가 가장 중요하고 바쁜 거. 그러니까 번호는 저장하고, 나중에 지나가다 인사하고, 술 먹고 싶을 때 연락해서 만나고 그러자.
어른스러운 말이었다. 나는 그냥 이 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대답을 못하고 있었는데, 형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중까지 다듬어서 말을 해주었다. 연륜이 묻어 나오는 대답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 아.. 네, 형. 형도 조심히 가세요."
- 응, 너도!
형은 그 말을 던지자마자 뒤돌아서 반대쪽 길로 가기 시작했고, 나도 그대로 지하철역으로 내려가서 학교로 향하는 지하철을 탑승하러 걸어갔다.
오늘 하루 전체의 수업을 날린 상태라,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현재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상황.
술 먹고 일어난 일들 전체가 분명 내가 했지만, 내가 아니라는 자기부정을 하면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누군가에게는 색다른 경험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야기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이번 일이 아마 후자에 가까운 일이 되었고, 연애와는 정말 멀어지게 되었다. 원래의 목표였던 취업과 공부에 집중을 하게 되었다. 사실 다시 종로로 가면 그 형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 부끄럽고, 아직은 마주치기 싫었다. 카톡도 간혹 가다가 먼저 왔지만, 형식적인 대답만 한 뒤 긴 대화를 이어나가진 않았다. 현재의 이 상황에서 연애와 마주쳐봤자, 어물쩡 넘어가며 말하는 나를 다시 보여줄 것 같아서, 내 의지로 사귀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려서 사귀는 것 같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서.
다음에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내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굴'만나더라도 내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는 것이 나중의 내 인연들을 위해서라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1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취업에 성공한 뒤, 친구와 종로를 나갔다. 1년 만에 나온 종로는 가게들 몇 군데만 바뀐 것 외에는 엄청 변하지 않았으며, 포장마차는 심지어 그대로였다. 사실 우리도 외모상으로 변한 게 하나도 없겠지만, 이 곳은 그대로였다.
그런 와중에 나는 그날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진 않았지만, 우연히 병국이형을 거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서로 웃으면서 인사하고, 지나쳤다.
우리는 일반 사람들보다 쉽게 만나고, 쉽게 엮일 수 있다. 작은 세계인만큼 각자의 인생이, 인연이 쉽게 엮일 수 있다는 말이며, 저마다 꼬여버린 실들처럼 뭉쳐있게 되면, 결국 다시 그 사람을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언젠간 발생된다. 인연으로 이어졌던 순간이 특별하여 그 사람과 관계를 가졌을지 모르지만, 관계가 끝나게 되면 지금 나처럼 종로나 이태원의 길에서 어색하게 마주하게 되는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 fin